죄와 용서 ·

멀리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긍휼

멀리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긍휼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긍휼’과 ‘은혜’라는 단어를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계속해서 받아 온 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이라도 멈추어서, 그 둘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참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하나님께서 다만 우리에게 얼마나 긍휼이 풍성하신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긍휼은 한 줄기의 소망도 없이 전혀 의지할 데라고는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까지 미치는 어떤 것입니다. 죄인들인 우리의 상황이 분명 이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하고 가련한 상태에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분의 긍휼은 계속해서 우리의 것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날마다 그 긍휼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포스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근원, 하나님의 긍휼의 범위,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이 어떻게 우리를 은혜이신 그분을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이끄는지를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근원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2장 4절과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의 근원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큰 사랑이고, 이것이 결국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긍휼이 얼마나 풍성할까요?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 즉 처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했던 우리의 상태를 보도록 합시다.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3절까지에서, 바울은 우리가 믿지 않는 이였을 때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가련한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그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안에서 운행하고 있는 영의 통치자를 따라 살았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았고, 육체와 생각의 욕구대로 행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는지! 우리는 허물과 죄들로 죽어 있었고,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따라서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상태에서 구원하기를 원하셨고 또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분의 풍성한 긍휼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쓴 사도 바울은 그 사람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의 범위를 이해한 그리스도인의 주목할 만한 본보기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3절에서 그는 우리에게 “전에 나는 모독하는 사람이요, 박해하는 사람이요, 모욕하는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고서 그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회복역 신약성경>에 있는 긍휼에 대한 각주 4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을 박해하는 사람이었던 사울은 먼저 긍휼을 받았고, 그다음에 은혜를 받았다(딤전 1:14). 긍휼은 은혜가 미치는 범위보다 더 멀리,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미친다. 사울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이었고 사람을 박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에 앞서 하나님의 긍휼이 그에게 이르렀다.” 하나님의 긍휼은 심지어 하나님을 모독하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박해한 사람에게까지 미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풍성한지, 그리고 얼마나 멀리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가장 자격이 없는 사람들, 즉 긍휼이 미칠 수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목표 바울이 주님께 돌이키기 전, 그에게는 분명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베풀어 주신 긍휼은 단지 그를 하나님을 모독하고 모욕하는 사람인 데서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위치 안으로 그를 이끌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근원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긍휼의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상태로 우리를 이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물에 빠져 거의 익사할 지경인데, 구조받을 소망이 전혀 없다고 합시다. 그럴 때 누군가가 당신을 물에서 끌어 내 준다면, 그것은 참으로 필요한 긍휼의 행동일 것입니다. 그 긍휼이 당신의 절박하고도 의지할 데 없는 상황 가운데서 당신에게 이른 것입니다. 당신이 뭍에 있으면서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었고, 그러고 나서 당신을 구출해 준 사람이 당신에게 아름다운 시계를 선물로 준다고 합시다. 그 선물은 은혜를 상징합니다. 당신에게는 먼저 긍휼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은혜를 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긍휼은 자격이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인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게 하는 자리로 이끌어 줍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는 것은 단지 우리가 처음 구원받은 날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심지어 그 날 이후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의 모든 나날을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은 믿는 이들에게 쓰인 것인데,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권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받고 은혜를 입어서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이 구절이 먼저 “긍휼을 받고”라고 말하고, 그런 다음 “은혜를 입어서”라고 말하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 먼저 그분의 긍휼을 받는데, 이것은 은혜를 입어서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목적은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 그분을 은혜로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긍휼과 그분의 은혜 모두가 우리에게 큰 보물들입니다. 신약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두 가지 증거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의 긍휼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임한 것에 대한 많은 사례들을 말해 주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신약에 나오는 두 가지 뛰어난 사례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9장은 세리 마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하나님의 긍휼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는 그를 매국노로 보는 그의 동료 유대인들에게 극도로 멸시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들이 증오하는 제국주의자 로마 사람들을 위해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천한 자들 중 가장 비천한 자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뒤따르기에 적합한 사람의 유형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관에 앉아 있는 중에, 주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를 따라오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긍휼이 마태에게 이르렀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주님은 이 멸시받는 사람을 단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그분은 얼마나 부드러우시고 자비로 가득하셨는지! 그분은 마태와 같은 사람을 부르셔서 그분을 따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분의 제자들 중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긍휼로서 우리에게 이르십니다. 이러한 체험을 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완전히 누그러집니다. 마태처럼, 우리도 우리가 하는 일을 내려놓고 그분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그분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종종 실패하고 그분의 은혜에서 멀리 떨어집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이것에 대한 가장 좋은 예는 바로 베드로입니다. 그는 분명 주 예수님을 사랑했고,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이고 거듭해서 실패했으며, 자신이 주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세 번 부인함으로써 사상 최저 수준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는 바로 주님께서 시련을 당하고 계셨을 때였습니다. 이 일 후에, 요한복음 21장은 부활하신 주님과 제자들이 해변에서 아침을 함께 먹을 때, 그분께서 특별히 베드로에게 오셔서 그와 친밀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그 대화를 통해, 주 예수님은 베드로를 애정 어린 방식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비참하게 실패한 후에 주님께서 그에게 쏟아 주신, 멀리까지 미치는 그분의 긍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베드로는 주님의 은혜를 다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실패하려 하지 않지만, 여전히 실패합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그분께 자백하면, 그것을 통해 그분은 우리 구원의 기쁨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분의 긍휼은 그분의 은혜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미칩니다. 이러한 긍휼이 우리의 현 위치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우리를 그분께 다시 이끌어서, 우리가 그분을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은혜로 한 번 더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긍휼과 은혜를 체험함 <회복역 신약성경>에 있는 히브리서 4장 16절의 긍휼에 관한 각주 1은 날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을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모든 연약한 느낌을 공감하시는 대제사장을 접촉함으로써, 긍휼을 받고 은혜를 입어야 한다.”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긍휼과 은혜를 받는, 한 가지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길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2절은 우리에게 그분께서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시다.’고 말하고, 시편 86편 5절은 그분께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풍성하신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상황에 있다거나 하나님 앞에서 가련한 상태에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다만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돌이키고,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분을 호흡해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절박한 경우에는 심지어 주님께 크게 외칠 수도 있습니다. 그 즉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풍성한 긍휼 가운데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그분 자신께로 다시 이끄실 것입니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에게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날마다 실행할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 무료로 배포되는 <회복역 신약성경>을 여기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