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용서 ·

사탄의 비난을 처리하는 것을 배움

사탄의 비난을 처리하는 것을 배움
우리는 미국인을 위한 성경(BFA)에서 봉사하는 한 직원의 간증을 여러분이 읽고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 간증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에게서 오는 비난을 처리하는 데 그리스도의 피의 효능과 능력을 깨닫게 된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놀랍도록 효능이 있는지를 깨닫게 된 저의 체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그분의 피가 저의 죄들에서 저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탄 곧 하나님의 원수에 대항하는 그 피의 능력에 대해 항상 깊고 풍성한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워치만 니가 쓴 <영광스러운 교회>에서 발췌한 이 글은 진실로 저의 체험을 잘 담고 있습니다. 이 발췌문은 153-154쪽에 있는 4장에서 가져온 것이며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로마서 5장 9절을 보자.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계속 마음에 불안과 자신의 잘못됨과 자신이 틀렸음을 느끼는가? 이것은 그들의 소망이 틀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극적인 것을 하나님에게 바치기를 소망했다.” 이것이 제가 반복해서 겪었던 체험이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친절해야 하고, 관대해야 하며, 절대 거짓말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항목들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결국 제가 충분히 노력한다면 그 기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착하고 거룩해지려고 더 노력할수록 저는 더 많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더 실패할수록 제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제 실패들 때문에 짓눌렸고 또한 하나님께서 제가 더 잘하고 더 잘되기를 기대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발췌문의 다음 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결코 하나님께 드릴만한 그러한 적극적인 것이 없음을 발견하기 때문에 사탄의 참소를 받는 것이다. 그 참소는 다음과 같다. ‘너는 이러한 사람이다. 너에게는 하나님께 드릴만한 좋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사탄은 매우 자주 이렇게 우리를 비난합니다! 제 눈에도 하나님의 눈에도 저는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제 실패들로 인하여 깊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워치만 니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는 적극적인 선함이 없고, 원래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어떤 좋은 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곧 피를 하나님 앞에 놓을 수 있고 오직 피를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 우리 자신에게는 적극적인 의가 없고 다만 구속으로 인하여 얻은 의가 있을 뿐이다.” 결국 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마치 다시 한번 구원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행실을 개선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던 것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받아들여질 만한 수준의 선함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저를 늘 따라다니던 느낌에서도 해방되었습니다. <회복역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 1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이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셔서 우리에게 지혜, 곧 의와 거룩하게 함과 구속이 되셨습니다.” 이 절은 우리의 의가 그리스도 자신임을 볼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는 의가 없고 우리에게 속한 것에도 의가 없습니다. 이사야서 64장 6절은 우리의 의가 심지어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구속받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그분께서 저의 의가 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영광스러운 교회>의 발췌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매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오는 것은, 이 보좌가 은혜를 주는 곳이지 공의를 요구하는 곳이 아니므로 은혜를 얻기를 앙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첫 번째 자격은 곧 우리의 구속받은 신분 때문이지 우리가 진보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나는 요 며칠간 아주 좋았기 때문에 기도할 담력을 갖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매번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우리의 지위, 우리의 근거는 모두 피에 있다.” 물론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명 안에서 계속 자라야 합니다. 날마다 아기가 똑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제가 반드시 깨달아야 했던 것은 제가 그리스도인의 생명 안에서 전진하는 것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자격을 갖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 구속받은 사실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갖추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의 영원한 위치는 예수님의 구속하는 피입니다. 워치만 니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영적인 성장도 보혈의 효능을 대치할 수 없고, 어떤 영적인 체험도 피로써 성취된 일을 대치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비록 어떤 사람의 영적인 분량이 사도 바울 같고, 사도 요한과 같고, 사도 베드로와 같을지라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여전히 보혈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 제가 어디에 있는지와 상관없이, 또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와 상관없이, 제가 꽤 잘했다고 느끼든, 아니면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느끼든, 하나님 앞에서 저의 근본적인 필요는 항상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워치만 니는 계속해서 사탄의 비난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때로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사탄이 와서 참소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죄가 없을 때에도 사탄은 와서 참소한다. 때로는 우리에게 죄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적극적인 의가 없기 때문에 사탄은 여전히 우리를 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오직 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도 피로 인함이요,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음도 피로 인함이다. 우리는 결코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다.” 제가 오랫동안 받은 유죄판결의 근원은 바로 사탄 자신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사탄은 ‘우리 형제들을 비난하던 비난자’로 불립니다. 사탄의 주된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그들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저를 비난하러 올 때, 저는 제가 행한 어떤 것이나 자신의 어떠함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탄이 “너는 아무 쓸모가 없어. 너는 하나님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할 때, 오히려 저는 사탄에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가리키며 심지어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그분 피를 흘리셨고 하나님 앞에서 그분께서 저의 의이시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로 그를 이겼으며, 또한 죽기까지 자기들의 혼생명을 사랑하지 않았다.” <회복역 신약성경>의 피에 관한 각주 2는 정말 도움을 줍니다. “어린양의 피는 우리의 구속을 위한 것이며, 또한 이 피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의 모든 비난에 대응하여 그를 이기게 한다. 우리는 마귀의 비난을 느낄 때마다 이 피를 적용해야 한다.”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그분의 피로 인하여 우리는 모두 그분께 나아갈 자격을 갖게 됩니다. 또한 그분의 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사탄의 비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의 이 장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사탄의 비난을 처리하는 것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저는 여러분이 직접 이 내용을 읽어 보기를 진심으로 권합니다. 제가 발췌한 부분은 153-154쪽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