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생활 ·
성경이 말하는 변화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자신의 어떤 면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오늘날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기 개선을 다루는 엄청난 양의 서적들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 어떻게 살고 처신해야 하는지에 관한 신약의 말씀들을 읽다 보면, 우리도 그렇게 살고자 하는 갈망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러한 말씀과 자신의 일상생활을 비교할 때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모자란 사랑과 턱없이 부족한 인내와 어떤 상황에 반응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자신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역시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방식의 변화는 아닙니다. 사실 성경도 ‘변화'에 관해 다룹니다. 이 게시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변화의 사전적인 정의 우선 메리엄-웹스터 사전에서 ‘변화'라는 단어가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전에서 ‘변화'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외양 또는 형태에 발생한 상당한 변형 또는 완전한 변형입니다. 집을 보수하는 것이나 누군가의 외모가 완전히 바뀐 것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변화'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집이나 사람은 상당한 변화를 거쳐 결국 다른 외양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것이 자신과 자신의 행위를 개선하여 좀 더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지니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의미하는 변화는 우리의 외적인 행위와 자기 개선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성경에서 읽은 말씀에 부합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원숭이가 사람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원숭이의 학습된 행동일 뿐 참다운 사람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원숭이에게 사람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그분의 말씀에 제시된 표준을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표현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주시어 우리 안에서 운행하는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유기적인 변화를 거치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의미하는 바와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변화되고 있음 고린도후서 3장 1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됩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우리가 자신의 행위를 개선하여 변화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절에서 ‘변화되어'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통하며 그분을 바라볼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회복역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3장 18절의 각주 8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가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주목하고 반사할 때, 주님은 그분의 존재와 그분이 이루신 모든 것의 요소를 우리에게 주입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진대사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으며, 그분의 생명의 본질로, 또 그분의 생명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생명의 외형을 갖게 된다. 이것은 주로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짐으로(롬 12:2) 그분의 형상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변화되어’는 우리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각주는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존재와 그분이 이루신 모든 것을 주입하신다고 말합니다. ‘주입하다’의 의미는 무언가를 채우고, 무언가에 스며들고, 무언가를 흠뻑 적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바라볼까요?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을 바라봄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그 영이신 주님은 우리의 영 안에 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과 교통할 때 우리는 그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존재로 흠뻑 적시십니다. 이렇게 적셔질 때 그 결과 우리는 ‘신진대사적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되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운행하는 내적이고 영적이며 신진대사적인 과정입니다. 신체의 신진대사는 유기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신진대사를 통해 유기체는 살고 자라며 발전합니다. 바위와 같이 생명이 없는 물체는 신진대사를 거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생명이 없는 물건이 아닙니다. 거듭날 때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이 우리의 영으로부터 우리 존재의 각 부분, 특별히 우리의 혼 안으로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내적으로 변화되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실지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통해 외적으로 표현되십니다. 신진대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일을 잘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신체의 신진대사는 두 가지 활동으로 구성되는데, 첫째는 옛 요소를 분해하고 배출하는 것이고, 둘째는 새로운 요소를 생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더 많은 그리스도의 어떠함이 우리 안으로 주입되고 우리의 혼 안에서 확장되어 우리의 타고난 낡은 요소를 대치합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됩니다. 애벌레의 예 신진대사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예는 애벌레가 거치는 변화입니다. 태어났을 때 애벌레가 받은 생명은 그것을 나비로 변화시키는 생명입니다. 애벌레는 나비 의상을 입는 다거나 나비처럼 행동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애벌레는 다만 먹습니다. 필요한 영양소를 먹을 때 애벌레는 성장합니다. 그런 다음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 머물 때 조금씩 조금씩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결국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 고치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기어다니던 벌레 같은 생명체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유기적인 과정의 산물입니다. 영적으로 출생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애벌레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음식을 먹어야 하고,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생명 안에서 자라고 발전합니다. 자랄 때 우리 안에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참된 음식과 음료로 흡수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살아 있는 떡이시며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생수이심을 봅니다. 그분은 우리가 매일 흡수해야 할 영적인 자양분이십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생명 안에서 자라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같은 형상으로 변화됨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변화할까요?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우리가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의 각주 8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즉 그분과 똑같이 되는 것이다(롬 8:29).” 사복음서를 읽을 때 우리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 그분께서 사신 삶은 어떠한 결함이나 실패나 불완전함이 조금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분의 행동과 태도와 사람들을 돌보시는 모습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탁월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완전히 표현하는 삶을 사신 유일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예수님은 그 영으로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십니다. 우리의 영 안에서 그분을 접촉하고 바라볼 때,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존재와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것으로 흠뻑 적시시어 그분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시고 그분과 똑같이 되게 하십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자신을 개선하거나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그 어떤 목표보다 훨씬 뛰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단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뿐 아니라 우리의 태도와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우리의 결정이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금씩 조금씩 우리는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고 그분과 똑같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바라보고 먹고 마심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화는 평생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거나 조급해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것은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참다운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중심적인 것은 우리가 시간을 들여 주님을 바라보고 지속적으로 그분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성경을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양육하는 생명의 공급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신체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은 자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자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자양분을 지속적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하루를 건강한 ‘영적인 아침 식사'로 여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그런 다음 하루 종일 우리는 잠시 시간을 내어 아침에 기도로 읽은 말씀의 절이나 짧은 어구를 ‘곱씹어' 먹거나 또 다른 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주님을 마시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어느 때나 우리는 “오, 주 예수님" 또는 “주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를 열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목마를 때마다 우리는 다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그분을 또다시 마실 수 있습니다. 변화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일부입니다. 이 게시물에서 우리는 변화라는 놀라운 과정을 간략히 다루었을 뿐입니다. 한국에 거주하신다면 이곳에서 무료 <회복역 신약성경>을 주문하셔서 이 게시글에 언급된 말씀들과 더불어 함께 실려 있는 각주들을 읽어 보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우리는 또한 <생명의 인식>의 12장 ‘생명의 성장이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해 드립니다. <생명의 인식>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무료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