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획 ·
어떻게 하나님께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그분 자신을 주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로서 우리는 그분을 위해 보답으로 무언가를 해 드리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그분께 “주님,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또는 “제가 어떻게 당신께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는 이미 그분을 섬기는 수많은 천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인 우리가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이 과연 그분께 필요하신 것일까요?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게시글에서 우리는 신약 <회복역 성경>의 몇몇 절과 각주를 참고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성경의 계시를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그분을 표현하는 것임 또 다른 게시글에서 우리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중대한 주제를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우리와 함께 나누고자 하시는 갈망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분 자신께서 내적으로 우리와 합하여지심으로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온 존재를 채우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질 때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고 자연스럽게 그분을 표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떠나 무언가를 하는 것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되고 그분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의 결과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많은 선한 행위들을 실천할지도 모르지만 그 일들을 하면서 우리는 전혀 하나님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을 표현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지 않고 자신의 타고난 인격과 힘으로 그 일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릇으로 창조됨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하게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가 그분을 담고 그분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릇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사실을 보여 주는 여러 절 중 하나는 로마서 9장 23절과 24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 대하여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어찌하겠습니까? 이 그릇은 우리, 곧 그분께서 유대인들 중에서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신성한 토기장이이시고, 사람은 그릇입니다. 이 그릇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받아들이며 담을 수 있는 사람의 영을 지니도록 계획되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속이 비어 있는 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었을 때 자신의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인 우리의 영 안으로 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영 안에 사시며 우리를 완전히 채우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표현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그분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를 가득 채운 것이 바로 우리가 자동으로 표현하는 그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채워진다면 그분을 표현할 것입니다.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면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표현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관심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마시고, 채워지고, 그분을 표현함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으로 온 존재가 채워지고 흘러넘칠 때까지 끊임없이 그분을 받아들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영이 있는 존재로 만드셨을 뿐 아니라 우리 안에 그분에 대한 갈증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목마름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갈망합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이 목마름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과 3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시어 외치셨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나에게로 와서 마시십시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한 대로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 예수님은 “나에게로 와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십시오.”라고 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나에게로 와서 마시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점을 주목해 주십시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께 와서 생수이신 그분을 마심으로써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을 마실 때 생수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올 것입니다. 우리에서 흘러나오는 이 생수의 강들은 무엇입니까? 신약 <회복역 성경>에서 38절에 언급된 ‘생수의 강들'에 대한 각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생수의 강들은 생명의 여러 방면에 따른 많은 흐름으로서(비교 롬 15:30, 살전 1:6, 살후 2:13, 갈 5:22-23), 하나님의 생명의 영(롬 8:2)인 유일한 생명수의 강(계 22:1)에서 발원한다. " 이 각주에 언급된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은 생명의 여러 방면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영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인자와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자제이니, 이런 것들을 반대할 율법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나열된 그 영의 열매의 이 항목들은 신성한 생명의 여러 방면과 그 영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마실 때, 그분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사랑의 강들로 또한 생명의 여러 방면으로 흘러나와 다른 이들에게 흘러갑니다. 그 영을 마심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가서 마실 수 있습니까? 물론, 주님은 물질적인 물을 마시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분께 와서 마시라고 외치신 후에, 바로 요한복음 7장 3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그 영은 우리가 마시는 물이시며, 이 물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고 우리를 흘러넘치도록 채우십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에서 ‘영’에 대한 각주 1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각주는 성경에 담긴 그 영에 대한 간략하지만 놀라운 조망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태초부터 계셨지만(창 1:1-2), 그리스도의 영(롬 8:9)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 1:19)이신 그 영은 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아직 계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에 영광스럽게 되셨다(눅 24:26).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으므로,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 안으로 그 영을 불어 넣으셨다(요 20:22). 지금 그 영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에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 곧 ‘실재의 영’이시다(요 14:16-17). 그 영께서 하나님의 영이셨을 때에 그분께는 다만 신성한 요소만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어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신 후, 그 영은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것의 모든 본질과 실재를 가진 신성한 요소와 사람의 요소를 다 가지셨다. 그러므로 지금 그 영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위한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시다(요 7:38-39). " 이 각주는 우리가 육체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활 안에서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그 영이 되셨음을 보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생수이신 이 놀라운 영 안을 통해 그분의 온 존재와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하게 그분을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마실 수 있음 우리는 어떻게 그 영을 마실 수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물은 그 영이심으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인 우리의 영을 훈련하거나 사용하여 이 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영을 사용하여 주님께 나아와 마시는 단순하고 누림직한 한 가지 방법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그 영을 접촉하고 생수이신 그분을 마십니다. 하루 온 종일 우리가 직장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교실에 있든지,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그 영을 마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 주 예수님, 저는 직장에 가는 길입니다. 주 예수님, 저는 바로 지금 당신을 마십니다.”라고 말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더 많이 마실수록 우리는 더 많이 채워지고, 생수의 강들은 더 많이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다른 이들에게 흘러갑니다.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여러 방면을 통해 표현되신 하나님입니다. 그 영으로 채워짐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 대신 우리는 단순하게 생수를 마시고 날마다 우리의 영 안에서 충만해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부터 21절까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마십시오. 술 취하는 것은 사람을 방탕하게 합니다. 다만 영 안에서 충만해지십시오. 이를 위해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시를 읊고, 항상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우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신약 <회복역 성경> 에베소서 5장 18절의 각주 1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술 취하는 것은 몸 안에서 충만해지는 것이지만, 영(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서 충만해지는 것은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되어(엡 1:23)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는(엡 3:19) 것이다. 우리의 육체의 몸이 술에 취할 때, 우리는 방탕하게 된다. 그러나 영 안에서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로 흘러넘쳐 서로 화답하고 노래하고 시를 읊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뿐만 아니라(엡 5:19-20), 서로 복종하게 된다(엡 5:21)." 에베소서 5장 19절의 ‘화답하고'에 대한 각주 1은 우리가 충만해지는 것의 &결과'가 또한 우리가 충만해지는 ’길‘임을 밝혀줍니다. "5장 19절부터 21절까지는 5장 18절의 ‘영 안에서 충만해지십시오’를 한정한다.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는 노래하고 찬송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서로 화답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화답하고, 노래하고, 시를 읊고, 하나님께 감사하고(엡 5:20), 서로 복종하는 것은(엡 5:21) 영 안에서 충만하게 되어 흘러넘치는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영 안에서 충만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그리스도로 층만해지는 길은 그분의 이름을 불러 그 영을 마시고, 찬송으로 화답하고 노래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할 때 우리는 더욱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 자신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으로 충만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통해 표현되실 것이며 결국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이뤄내실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영 안에서 충만해져야 합니다. 한국에 거주하신다면 이곳에서 무료 신약 <회복역 성경>을 신청하시기를 권합니다. 위에서 인용된 요한복음 7장과 에베소서 5장의 절들에 관한 해설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어 그분의 표현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갈망에 대한 더욱 깊은 인상을 받으실 것입니다.